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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나라 - 과테말라] 잃어버린 마야의 숨결을 간직한 나라

Sojipapa 2025.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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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후손

고대 마야 문명의 중심지이며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는 과테말라는 원주민인 인디오,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 백인 등 여러 인종이 섞여서 살고 있어요. 백인들의 인구수는 적지만 큰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메스티소는 백인들 아래에서 일을 많이 합니다. 마야족의 진정한 후손인 인디오는 본인들의 전통을 지키며 이곳이 마야 문명의 중심이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고유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고 살아가죠. 전통 의상은 매우 눈부신 색채와 독특한 무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해요. 여성들의 상의는 우이필이라고 하는데 부족마다 색상과 무늬가 다르죠. 그래서 우이필로 어떤 부족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화산이 만들어낸 호수

중앙아메리카 북서쪽에 있는 과테말라는 국토 대부분은 산지이고 화산도 많습니다. 가장 높은 산은 타후물코 화산인데, 폭발 시 생겨난 분화구에는 아름다운 호수를 간직하고 있어요. 이런 호수는 과테말라의 중앙을 통과하는 시에라마드레 산맥 근처에 많아요. 반면에 서쪽의 태평양 주변과 동쪽의 카리브해 주변에는 평야가 있죠. 기온은 우리나라의 봄 혹은 초가을 날씨와 비슷해 일 년 내내 온화하지만 해안가 및 낮은 지대는 습기가 많고 덥죠. 11월에서 이듬해 4월에는 비가 거의 없으며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비가 많이 내립니다.

과테말라의 수출품

농사를 짓는 많은 사람들은 시에라마드레 산맥에서 중앙 고원 쪽으로 이어진 산맥은 화산재가 많이 덮여 있어요. 그래서 이 지역에는 커피를 많이 재배해요. 과테말라에는 커피가 없었지만 1750년 에스파냐 예수회 선교사들이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지금의 과테말라는 커피가 최고의 농작물이죠. 바나나도 많이 재배하는 과테말라는 카리브해 주변의 평야가 주 생산지 였지만 지금은 태평양 주변에서도 재배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 바나나의 주인이 미국의 큰 식품회사여서 바나나를 그렇게 많이 수출하지만 과테말라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마야 문명의 중심지

기원전 800년 과테말라 북부 페텐 지역의 깊은 정글에 살았던 마야 인들은 티칼이라는 도시를 세웠어요. 수준 높은 문명을 가지고 있던 마야 문명, 티칼에는 그 당시 지은 많은 신전 피라미드와 궁전이 남아있죠. 마야는 서양 사람들보다 숫자 0을 사용했으며 1년이 365일이란 것도 알았죠. 하지만 이 고도 문명도 900년 무렵 사라졌으며 그 유적만 남아있어요. 그들이 사라진 이유는 아직까지 미스터리입니다.

중앙아메리카 연방, 독재와 저항

1524년 에스파냐가 과테말라를 약 300년 동안 지배하였어요. 그러나 1807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에스파냐를 침략하자 그 혼란을 틈타 1821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하게 돼요. 그 후 1823년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와 중앙아메리카 연방을 결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1838년 정치가 라파엘 카레라가 반란을 일으키고 중앙아메리카 연방은 해체되죠. 그리고 1847년 과테말라 공화국이 설립됩니다. 라파엘 카레라는 1865년까지 독재 정치를 하게 되고 혼란이 지속되게 됩니다. 1854년 미국의 도움으로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에 맞선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과테말라, 안티과

현재 과테말라 수도는 과테말라로 도시는 그리 크진 않습니다. 날씨는 1년 내내 선선하고 온화하죠. 마야 문명의 중심지라 선조들이 남긴 유산을 소장한 박물관이 많습니다. 또한 전통 의상을 입는 사람들도 많죠. 안티과는 1773년 대지진이 발생 전까지 과테말라의 수도였는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들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죠. 대지진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말이죠. 지금도 활화산이 안티과를 둘러싸고 있으며, 식민지 시대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197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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